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중심으로 한 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이다. 그들은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 속에서 상인과 수공업자와의 접촉을 통해 상공업 발전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유통의 확대 내지 생산 자체의 기술적 혁신으로 생산력의 발전을 촉진시켜 줄 것을 주장한다. 이우성, 앞의 책, p23
또
열하일기 1』,이가원 옮김, 민문고, 1966, pp.438-439) 심세편 참고할 것.
여기에서 박지원은 중국의 것을 배워 쓰면서 중국을 멸시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자생 인텔리(박제가, 박지원)가 그들이 속한 조선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고 문학 작품에서 상상적 문자로
현실을 재해석한 것은 미래에 대한 대안 제시의 의미가 있으며, 이는 현실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동시에 고양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Ⅱ. 연암 박지원의 시대적 배경
18세기를 전후하여 조선 후기 사회는 극심한 갈등으로 번민하면서 소리없이 요동하며 절규하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
현실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박지원은 이렇듯 봉건사회가 해체될 조짐을 들내 보이고, 지배계급 내부의 전재과 서학에 의한 새로운 사상적 충격이 어우러지던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열하일기》를 통해 청나라의 문물 제도와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뒤떨어
현실주의적 입장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낙론계가 많았으며,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北學思想) 조선의 현실을 개혁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당시의 양반사회에 대한 비판과 현실개혁에 대한 내용들이 그들의 저서에는 많이 담겨져 있었다. 유수원의 『우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담헌 홍대용의
열하여행을 다녀온 시기, 제 3기는 관직에 진출하여 과거의 반항적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에 옮겨보려했던 시기로 설명할 수 있다.그가 안의현감 생활을 하면서 쓴 열하일기와 면천군수 시절에 남긴 과농소초, 한민명전의, 안설등은 연암의 현실 개혁사상을 이론
열하에서 피서를 즐기는 바람에 열하까지 가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연행을 통한 깨달음의 기행 경험을 수년간 정리하여 귀국 후에 연암 골짜기에 들어가 머물면서『열하일기』25편을 저술했다. 이 작품은 랴오둥[遼東]·러허[熱河]·베이징[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
실학파의 학파적 성립을 보게 된다. 성호 이익을 중심(大宗)으로 하고 권철신 · 이가환 · 안정복 등이 주축이 되어 제도개혁론을 주장하는 18세기 전반의 성호학파와 청나라의 문화와 청에 들어와 있는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이자는 담헌 홍대용(1731-1791) · 연암 박지원 · 초정 박제가(1750-
「허생전」
조선 후기 정조 때 실학자 박지원의 한문 단편 소설로 『열하일기』<옥갑야화(玉匣夜話)>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은 행동의 양과 범위가 크고 넓으며, 외국과 교역하여야 하고 나라 안에는 수레가 다녀야 한다는 작가의 실학적 경륜을 볼 수 있으며, 또 그의 다른 소설과 달리 북벌론자